일상

30대의 수두 투병기

[영민] 2019. 8. 2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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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던 여자 사람 친구가 있었다. 

그 땐 나한테 결혼하자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디갔는지...

 

암튼, 6살인가 7살 어느해인가, 예쁘장한 얼굴에 빨갛빨갛한 물집과 함께 정체를 잘 모르지만, 빨간 그 곳에 핑크 빛 무언가가 발려있었다. 

그리고 수두에 걸려있던 친구가 날 껴안으려고 하면, 그 친구의 엄마와 우리 엄마가 갈라놨었다. 

안돼!! 라고 하면서 말이지...

 

이게 내 25여년 전의 수두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이다. 

 

예방 접종도 맞고 다 맞았고, 수두를 걸릴 나이는 지났다 생각했었는데, 

 

지난 달, 7월 어느날.... 

 

조짐이 이상한건 19일 무렵부터... 소변을 보는데, 뜨거운 온수가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냉방병이겠지...) 

20일 저녁부터, 밤에 잠을 잘 때 신물이 올라와서 제대로 잠을 못잤다. 

많이 쳐먹었거나, 스트레스로 속이 쓰린갑다... 생각했다. 

 

23일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한 말 또 하고 또하고, 열도 제법 나는 느낌에, 뜨거운 온수가 콸콸 터져나오는 느낌도 가시지 않았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 양반도 머리를 갸우뚱 거리면서, 야 너 좀 이상한데 증상이 가시지 않으면 검사 하자... 내가 보기엔 너 좀 이상한 느낌이야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하셨다. 

 

약은 제산제 위주로 처방 받았다. 

 

23일 수요일, 너무 아파 집 근처에 있는 병원에서 수액을 한대 맞았다. 보통 수액이 맞으면 열이 떨어지는 느낌이 나는데, 

열이 더 오른다. 

 

24일 저녁에 여자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나 : 얼굴에 여드름이 계속 올라오는거 같아.

여자친구 : 이거 여드름이 아닌거 같아, 병원에 가보는게 좋을 것 같아

나 : 응 내일 가봐야 겠다. 

 

라고 하고, 영상통화를 종료

 

25일, 출근하고, 얼굴과 몸에 빨간 반점들이 24일 보다 더 퍼지기 시작했다. 

턱, 두피, 마빡, 눈가에 퍼지고 등과 가슴 등에 나기 시작했다. 

 

'시발.... 조짐이 좀 이상한데?...' 

부장님께 환부를 보여드리고, 인사팀장님과 이야기를 했다. 

 

'얼른 병원에 가봐요.' 라고 하고, 회사를 쫓기듯 퇴근했다. 

 

그리고 지난 번에 진료 받은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이거 빨갛게 반점이 올라온다. 

열도 내리지 않고, 간지럽다라고 이야기 했더니,

 

병원에 피부과가 없어서, 진료 의뢰서를 써준다고 하더라 

 

처음엔 인근의 작은 피부과를 알려주다가, 계산을 할 때 다시 이야기를 들었는데, 

본인도 의심스러운지,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진료 의뢰서를 써줬다. 

 

발진은 시간이 갈 수록 더 올라오기 시작했고,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세브란스 병원 피부과를 진료의뢰서를 들고 갔다.

 

예약도 안한 상태에서 일반 의원 처럼 예약하면 될 줄 알았지...

근데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진뢰 의뢰서를 들고 왔는데요.수두 의증인 것 같아요. 접수 되나요?"

"지금은 끝났고, 예약이 8월 초순까지 꽉차서 8월 8일에나 예약을 잡아드릴 수 있는데 잡아 드릴까요?"

"네?.."

 

순간에 빡침이 올라왔는데, 뭐 저 들의 입장이 저렇다는데 어떻겠어....

 

병원을 나와서 인근의 큰 병원들을 전화해봤는데, 외래 진료 보는 시간도 대부분 종료된 시간이기도 했고, 

여의도 성모병원은 응급실에서 피부과 진료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에라이... 시발... 

이렇게 된 이상, 눈 앞에 있는 세브란스 응급실로 들어가자! 

 

"어떻게 오셨어요?"

진료의뢰서의 증상으로 왔습니다.

"접수부터 하세요." 

생각보다 이른시간인지라, 접수 후,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았는데...

 

증상이 나타난 곳을 여기저기 찍고, 혈액검사를 하고 기다리라고 하더라...

환자들 사이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그러더니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저기 마스크 착용하시고, 저 따라오세요."

그리고 간호사를 따라갔는데,뭔가 중환자들이나, 격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법한 유리벽이 있는 격리실에 있으라 했다. 

 

"일단 여기서 나오지 마세요." 

격리잼 ㅋㅋㅋㅋ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수두의 전염성이 꽤나 강력하다고 해서 날 만지거나, 내 물집이 남에게 뭍어도 안된다 하더라 

 

날 만나러 오는 의료진들은 구제역이나 메르스 등에서 볼 법한 방진복과 마스크를 쓰고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응급실에서 6시간을 대기 했다.

 

응급실 피부과 의사 선생과, 간호사 선생을 차례로 만나고, 집에서 자가 격리하고, 발진이 난 곳에 딱지가 앉기 전까지는 

나가지 말라고 하더라 

 

8월 2일 외래 진료 때 감염 내과 진료를 받으라는 이야기와 함께 

 

감염내과엔 면역력 약한 분들이 있는데, 내가 수두 바이러스를 뿌리면 안된다는 이유였다. 

 

감염 내과에서 준 약을 먹고, 진이 빠지거나, 힘이 없어질 땐, 즉시 응급실로 오라는 가슴철렁한 경고와 함께 

퇴원 했다. ㄷㄷㄷ

 

병원비는 응급실 진료비 29만 7천원 

 

혈액검사랑 응급실 비용으로 제법 비싸게 아팠다.

 

그리고, 8월 5일까지의 재택근무를 강제로 받았다. (병원에선 9일까지 쉬어도 괜찮았다고 했는데...)

 

다음 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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